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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서귀포는 서불이 지나간 자리에서 유래 했을까?


제주도의 3대 폭포중에 하나라는 정방폭포에는 서불문자가 남아 있다고 한다. 사실 이 문자를 정확하게 해석했다고 하는데 그 말 자체가 신빙성이 없다. '서불과차'라 하여 서불이 지나간 곳이라 해석을 하지만 추사 김정희가 탁본을 떠서 중국의 학자에게 보냈고 해석이 불가하다고 답변을 받았다고 하는것을 지금와서 완전히 해석했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제주에는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려 떠난 서불에 관련된 얘기가 남아 전설로 내려오고 있었고, 서불이 불로초를 구해서(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려온 곳을 '서귀포' 로 명명했다는 얘기는 그럴듯 하게 들린다.

서불과 관련한 이 동화같은 이야기가 희대의 사기극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이 되어 진실로 거듭나는 것일까? 서불과 관련한 내용들은 다양하게 나온다. 그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점과 진시황이 불로초를 못 구했다는 점을 빼고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지만 제주의 정방폭포는 그 옛날 누군가 그 앞을 배를 타고 지나갔다면 반드시 배를 세우고 내려서 그 화려하고 신비한 폭포를 구경하고 갔을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나름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단순하게 장난기어린 심정으로 그 폭포앞 바위에 뭔가 흔적을 남기고 갔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서불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문헌을 찾아 본 결과 사실 속이 시원해 질만한 결론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그 전설과 함께 제주의 서귀포가 가지는 매력은 더욱 커진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듯 하다.

by kissayon | 2008/08/27 19:39 | Liberal | 트랙백 | 덧글(1)

EeePc 1000H 용 가상 이미지 데몬347, daemon347






EeePC 1000H 는 DVD 롬을 읽을 수 있는 드라이브가 없는 모델입니다.
실제로 요즘같은 세상에 활용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DVD가 없다는 것은 확실히 불편하지요. 그래서 데몬같은 가상이미지를 불러다가 설치하는 유틸이 필요합니다.

중요한것은 347버전 이전 버전을 설치하면 1000H의 부팅과 시스템 속도에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그러한 버그가 수정된 버전이 347버전입니다. 이버전을 깔고 쓰시면 이러한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시고 쓰세요.

늘 하는 얘기지만 그냥 받아가도 됩니다. 하지만 잘 받아간다고 말한마디 해주고 가면 당신은 매너쟁이~



daemon347.zip

by kissayon | 2008/08/11 14:33 | EeePC 1000H | 트랙백 | 덧글(4)

아이팟 나노 1세대용 락박스, Rockbox



rockbox-ipodnano.zipipodpatcher-kmgbest-jeonghyeonvm.zip


아이팟 나노의 초기화면이 지겹고, 아이튠이 무겁고 이유없이 미워진다면
이제 당신은 변화를 추구할 때이다.

락박스의 압축을 아이팟 디스크로 설정해서 압축을 풀고, ipodpatcher 를 실행하면
아이팟이 리부팅 되면서 전혀 다른 기기로 변신한다.

그리고...다운받아가면 고맙다고 한마디 적어주는 센스~~

by kissayon | 2008/08/11 14:26 | 트랙백 | 덧글(3)

EeePc와 어울리는 Microsoft bluetooth Laser Mouse 5000


EeePc는 애매하긴 하지만 모바일 기기보다는 노트북 기기로 분류하는 것이 더 적당한 표현인것 같다. 이 기기에 걸맞는 HID 는 역시 블루투스 기기들이다. 그런의미에서 마소의 이 마우스는 아주 좋은 궁합을 가진다. 늘 좋은 제품에 따라다니는 센 가격을 제외한다면, 유선 마우스의 고급스러운 품질을 원하는게 아니라면 이 제품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by kissayon | 2008/08/06 11:20 | EeePC 1000H | 트랙백 | 덧글(1)

김병호 박사의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김병호 박사는 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역사학을 정식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다. 말 그대로 개인적인 취미로 공부한 사람이고, 자신의 공부의 의의를 우리 민족역사의 자긍심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가설들이 모두 일리를 가지고 있는것은 아니지만 한번쯤 의문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그는 학계의 미움을 감수하고서라도 '?' 마크를 던질 수 있었던 사람이다.

작고하시는 그날까지 태국 치앙마이에서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조금이라도 더 되찾고자 노력했던  그 분의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과연 단군시대에 문자가 있었을까?

(여기서 "나"는 저자인 "김병호박사"를 지칭한다.- 이하같음)

   이렇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가림토"문자가 있었다고 대답한다.(중략) 만약 단군조선시절부터 문자생활을 하였다면 우리 민족은 주변의 다른 민족에 비해 월등히 높은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 되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세계적인 문화민족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경상남도 남해군 어느 한적한 바닷가로 떠나보자. 그곳의 바위위에는 매우 이국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다. 언제 누가 무슨 목적으로 바위위에 그런 문양을 각인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글자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후세 사람들은 이 글자들을 일단 "서불문자"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왜 이같은 문자가 한반도에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문자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4천 년 전 점토판에 새긴 수메르 문자나, 이집트의 상형문자도 해독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구 한 사람 신화시대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메시지를 풀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만약 풀기만 하면 우리가 잃어 버린 단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분명 조선 4대 임금인 세종대왕때 만들어서 1443년 반포한 것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기 위해 집현전 학자를 중국에 13번씩이나 보냈고 또, 한글이 완성된 다음, 권제등으로 하여금 "용비어천가"를 짓게 하고 수양대군을 시켜 "석보상절"을 편찬케 한 바가 있다. 그 이후, 한글은 중화사상에 중독된 일부 학자들에 의해 천시되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금세기에 들어 범국민적인 문자로 자리잡고 어느덧 민족의 자랑거리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자랑스러운 한글에 대해 의문을 품은 발단은 한 장의 상소문에서 출발한다.
   상소문의 주인공은 세종시대의 학자 최만리, 그는 한글 창제의 반대편에 섰던 사람으로 옥에 갇히면서까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미스터리 같은 이야기가 있다. 최만리의 상소문에는 엄청난 파장의 예고하는 핵폭탄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건만 왜 오늘날까지 이것을 문제삼은 학자가 별로 없었는가? 먼저 최만리의 주장을 검토해보자.

   감히 말하기를 "언문은 본디 다 옛글자요, 새로운 글자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글자의 형태는 비록 옛 전문을 모방하였다지만,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이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바가 없습니다.
(세종실록 권 103 26년(1444)2월 庚子)

   최만리의 주장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한글의 자모는 모두 다 옛날부터 있었던 것인데, 세종대왕이 모방하면서 "글자를 변경시켰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최만리의 그와 같은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확인 작업을 하기에 앞서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이와같이 엄청난 사실을 주장한 최만리라는 사람은 과연 믿을 만한 사람이었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그는 세종때 부제학의 벼슬을 지낸 쟁쟁한 학자로 그의 지위나 당시의 학문적 분위기로 보아 황당무계한 괘변을 늘어놓을 만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더욱이 <세종실록> 25년 조에는 최만리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내용이 또 있는데 한글 28자는 옛 "전자(篆字)"를 본받았다는 기록이었다. 따라서, 한글의 자모를 고대문자에서 빌려왔다는 <세종실록>과 최만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역도 성립해서 우리 역사의 신화시대에 벌써 문자가 있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세종대왕 이전에 있었다는 우리의 문자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최만리의 상소문에 포함되어 있는 문제된 내용을 간추려 보자.

1.한글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에 있었던 글자를 모방한 것이다.

2.단지 옛글자의 음가의 조합만을 바꾼 것이다.

   한글의 자모를 세종대왕이 손수 만들지 않았다면 민족적 긍지에 큰 충격일 수밖에 없지만, 그대로 진실은 밝혀야만 한다. 우리는 항간에 전해내려온 일화로 세종대왕이 한글의 글꼴을 만들 때 문살을 보고 착생했다고도 하고, 혹은 농기구를 보고 본을 땃다고도 하지 않았던가. 저자 역시 최만리의 상소문을 읽고 나서도 한동안 과연 그의 주장이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저자는 한글 문제만큼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추적을 해서 사실 여부를 가리기로 결심을 했고, 따라서 지금까지 기술한 것은 문제 제기 단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어느날 나는 한글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또 하나의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추적의 단서를 제공한 것은 조선 성종 때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의 한 구절이었다. 즉, 한글의 자모를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빌려왔다는 내용이었다.

    1994년여름, 나는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인도의 서북부 수라스트란 반도에 위치한 구자랏주 바도다라시를 찾아갔다. 놀랍게도 성현의 <용재총화>의 기록이 사실이었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시가지의 간판을 가득 메운 낯익을 한글자모들을 보자 뜻밖에도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한글의 원형을 찾기 위해 인도에까지 왔지만, 한편으로는 제발 한글의 흔적이 없었으면 하는 민족적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러한 함께간 동료들은 나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길거리의 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 탄성을 질러댔다.

"우리의 한글이 그대로 있잖아!"
" 정말, 꼭 귀신에 홀린 것 같네"

동료 한 명은 아예 우리말로 간판들을 읽었다.

"타라 쳐서커터...."

   나도 어느 간판이나 70%이상 한글식으로 읽을 수가 있었으니 속된 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날 오후 수소문 끝에 산스크리트어 학자를 찾아나섰다. 인도 특유의 비좁고 지저분한 골목길을 한동안 들어가서 허름한 집 대문 앞에 섰다. 뒤이어 그 집 주인인 노학자와 만나 방문이유를 설명하고 궁금한 점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산스크리트문자는 얼마나 오래 된 것이지요?"
" 아쇼카대왕 이전부터 있었는데 훗날 아쇼카대왕 때 가장 많이 쓰였지요"
"그럼 아쇼카대왕 때의 것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지금으로부터 2천5백년전쯤입니다."

   그때라면 우리나라는 단군시절의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노학자는 두터운 돋보기 안경알 너머로 나를 넌지시 바라보면 물었다. (중략) 노학자가 들려준 산스크리트어의 글자꼴은 한글과 똑같이 닮아 있었다. 글자꼴 뿐만 아니었다. 음운까지도 산스크리트어는 한글과 똑같았다.나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소리를 냈다.

   "한글의 자모는 분명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에서 가져온 것이다. 설사 민족의 정서가 용납하지 않는다 하더라고 진실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런 확신이 들었음에도 세종대왕의 업적을 조금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비록 한글 자모의 일부를 산스크리트어에서 차용해왔다고 하더라도 당시 문맹이나 다름없던 일반 백성들을 위해 문자를 보급, 정착시켰다는 사실은 한국사의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업적이기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산스크리트 문자는 고대 소아시아에서 살았던 히브리 또는 페니키아 문자에 기본을 두고 있다. 그래서, 한글은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의 모체인 히브리족의 문자에서 갈래쳐 나왔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제 저자에게서는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한 가지 더 남아 있었다. 최만리의 상소문에 씌어진 대로 세종대왕이 옛글자의 음가를 바꾸었다면 그 이전 고조선 시대에 사용했던 음가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에 와서 분명하게 확인할 도리는 없다. 그러나 한글의 모체가 된 인도의 산스크리트 문자와 음가를 비교하면 한글의 우너해 모습을 추측할 수가 있을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단군조선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한글 자모의 원형인 고대 산스크리트어처럼 발음을 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몇몇의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았다.

한   글

한글에 상응하는
산스크리트  음가
(구자랏주)

    사실 한글이 우리 민족의 독창적인 발명품이 아니고 외국의 문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쯤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 어느 문자든 독창적으로 된 것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문자의 차용 여부를 논하기보다는 우리의 조상들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이전의 신화시대에 벌써 문자생활을 했던 수준 높은 문화민족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 경상남도 남해군에서 발견된 "서불문자"는 어찌된 것일까? 이 불가사의도 우리가 훗날 반드시 풀어야만 할 숙제다. 그런데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남는다.  그것은 왜 동부 아시아의 광활한 땅 중에서 오직 한반도만이 서역과 끈끈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고대사에 있어서 한반도는 정녕 망망대해에서 자리잡은 하나의 외로운 섬이었단 말인가?

사진삽입예정

   (사진27 p125 한글을 빼어 닮은 인도 구자랏 문자.
    라씨(ㅌ->ㄹ, ㅣ->ㅏ, ㄹ->ㅅ. ㅐ->ㅣ,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방법과 자음이 겹쳐 있을 때 된소리가 나는 것 등 우리의 문법과 매우 유사하다. "라씨"는 음료수이름)

   편집자註 : 김병호박사는 우리 한글이 산스크리트어를 모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최만리의 상소에서 보듯이 고대의 전자를 모방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생생히 전해져 왔던 가림토문자를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림토글자는 노루의 발자국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지금의 한글의 모태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물론 음가같은 것은, 최만리가 주장한 바와 같이, 변형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중앙아시아에서 널리 자리잡았던, 당시의 문화적 선진국이었던 (단군)조선의 언어가 인도 등지에 전해졌고,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그 문자의 형태와 음가를 대부분 잃어 버렸지만(정치적인 이유등으로 인해서), 일종이 고립된 지역인 인도에서는 그 모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도 사투리를 통해서 고대어를 짐작하는 것을 국어시간에서 많이 배웁니다. 산간마을이나 오지 섬마을에는 고대에 전해진 언어가 그대로 남아 있어 많은 고대어연구에 자료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남아 있었고, 세종대왕때에 이르러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하는 바를 쉽게 하게 하고자 국가시책으로 자리잡았던 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한글의 음가와 자형이 우리의 언어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끝-

by kissayon | 2008/08/04 11:23 | 여행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Asus EeePc 1000H USB 메모리를 이용하여 부팅하기



CD롬이 없는 관계로 이렇게 부팅하셔서
고스트 이미지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운받는것은 언제든 좋지만 고맙다는 리플한마디 잊지마세요~

eee_boot_usb.zip

by kissayon | 2008/07/30 16:39 | EeePC 1000H | 트랙백 | 덧글(8)

Asus EeePC 1000H 좌,우, 뒤집기

SD슬롯도 있어요

USB는 총 3개


뒤집힌 모습은 그저 그래요

by kissayon | 2008/07/30 15:59 | EeePC 1000H | 트랙백 | 덧글(0)

EeePC 1000H vs 901

별차이 없을것만 같았는데 막상 펼쳐보면 형이랑 아우처럼 확연하게 덩치가 차이가 난다.


by kissayon | 2008/07/29 10:43 | EeePC 1000H | 트랙백 | 덧글(2)

EeePc 1000H


나의 새 친구...흰둥이

by kissayon | 2008/07/29 10:38 | EeePC 1000H | 트랙백 | 덧글(0)

우리의 시대를 살다




한동안 잠들었던 기분들이 요동을 친다.
약속은 약속으로 끝날뿐 말하는 말보다 거칠다.

삶이 죄악이 되는, 의지가 폭력이 되는,
모두의 열망이 분수가 되어 뿌려지는

우리의 시대를 살다.


2008년 6월30일

by kissayon | 2008/06/30 17:45 | Liberal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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